
Artist
이성택
서울, 성남
희미해진 기억의 단편과 감정을 담아냅니다.
작업실에서
스며든 형상들이 눈 안에 잠시 머무르는 듯 하다가도 이내 부서지듯 가라앉는다. 분명 존재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형태를 잃고 흐릿한 잔상으로 남겨지는 경험은 내가 화면 위에서 붙잡고자 했던 감각의 시작점이 되었다. 존재가 여백으로 스며들기 직전의 상태. 나는 그들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것은 한때 분명하게 인지되었으나, 이내 감각과 함께 가라앉으며 흐릿해지는 잔상을 붙잡아 보려는 시도에 가까웠고, 현 작업은 대상을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고정하기보다 정의되려는 순간마다 흔들리고 흩어지는 불안정한 상태 자체를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흑연의 물성을 단순히 형태를 규정하는 도구로 보기보다 화면 위에 남겨지는 물질적 흔적이자 행위의 기록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흑연의 자국은 하나의 윤곽을 넘은 압력과 마찰, 반복된 개입이 축적된 결과이며, 문질러지고 덧입혀지는 과정을 통해 경계를 흐리고 형상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생성된 흔적들은 시선의 초점을 방해하며, 정지했으나 지속적으로 흔들리는 이중적 모습을 지니게 된다. 그들은 지우거나 문지를 수 있으며, 흑연 특유의 금속성 광택은 빛과 시선의 각도에 따라 나타났다를 반복하여 시각적 불확실성을 조성한다. 이를 토대로 생성된 결과물은 뚜렷한 형상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형상이 무너지려는 찰나를 모두 간직하고 있으며, 흐려진 자국과 압력, 반복된 마찰까지 그동안의 발자취를 드러내게 된다. 반면 흑연의 아래를 지탱하는 잉크의 무작위성과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은 그저 우연성에 의거한 결과물이 아닌 내가 가장 붙잡고 싶은 찰나의 흔적에 가까울 것이다. 이들은 기억 속의 순간 혹은 흐릿한 저 너머의 단편적 장면 등을 명확한 구상을 배제한 채 재현한 결과에 가까웠고, 나는 그 잡히지않는 형상 그대로를 끌어안으려 했다. 도저히 뚜렷해지지 않는 그 과거의 찰나들은 잉크의 번짐처럼 화면 아래에서 부유한 채 머물렀고, 나는 그 위에 흑연을 개입시키며 그것들을 붙잡아 보려 했다. 부유하고, 사라지며, 정의할 수 없는 모든 불완전함까지 말이다. 결국 화면 위에 남는 것은 하나의 완결이 아니라 반복된 접촉과 마찰 끝에 겨우 붙잡힌 연약한 잔여뿐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아보려는 덧없는 욕망. 이것이 욕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저 흐르고, 번지며 지나간 그 찰나를 간직하고 싶었다. 그것이 잡을 수 있는 주체인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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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는 모두 세상에 단 한 점이에요.



